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퀼트란 무엇일까요?

 

퀼트가 널리 보급되면서 이제는 퀼트라는 단어를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되었지만 누군가 '퀼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머리속에서 빙빙도는 퀼트에 대한 생각들을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퀼트피싱 (piecing) 애플리케 (applique) 등의 기법을 사용하여 퀼트 톱 (quilt top)을 만든 후 솜 (interlining)과 뒷감 (backing)을 대고 누빔 (quilting)으로 완성된 수공예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조각작업(patchwork)을 한 후에 솜과 뒷감을 대고 도안대로 누벼 완성된 형태를 퀼트라고 하지요.

퀼트 톱의 재료는 주로 면직물이지만 실크나 레이온, 울 등 모든 종류의 직물을 다 이용할 수 있습니다.



         <퀼트의 구성>


1. 피스드 블록2. 애플리케 블록3. 얼터니트 블록4. 코너 삼각형
5. 사이드 삼각형6. 새싱7. 포스트8. 직선 배치9. 대각선 배치
10. 안쪽 보더11. 바깥쪽 보더12. 코너 블록13. 직선 보더
14. 마이터 보더15. 퀼팅 디자인16. 배팅17. 배킹(뒷감)18. 바인딩
* 퀼트입문서 “Quilts! Quilts!! Quilts!!!"(Diana McClun과 Laura Nownes 공저)에서 인용



<퀼트의 역사>
 

퀼트의 3요소라 할 수 있는 퀼팅, 애플리케, 피싱기술의 기원을 정확히 찾기는 어렵지만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 기법들이 사용되었으리라 짐작됩니다.

누빔(퀼팅)은 선사시대부터 존재했겠지만, 가장 오래된 예는 기원 전 3,400년의 이집트 제1왕조의 왕을 조각한 상아로 된 상에 나타난 누빈 옷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누빔 유물은 아마도 1924년 몽고에서 발견된 누빈 카펫일 것입니다.

이후 누빔 기법은 옷이나 침실용품에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록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특히 침대보로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유물은 서기 1,40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시실리언 퀼트로 불려지는 작품으로서 영국 런던의 한 박물관에 한 조각이 소장되어 있으며, 트리스탄의 전설의 여러 장면을 아름답게 묘사한 걸작입니다.





[시실리안 퀼트]

- 2개 한쌍으로 만들어 진 것 중에 영국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에 소장된 일부.

( 106x122 인치.)

- 앞, 뒤 하얀 리넨천에 면 패딩. 갈색의 리넨실로 주제를 누빈 후 솜을 넣고 자연색의 리넨실로 주변 패턴을 누빈 화이트 퀼트 침대보

애플리케와 피싱기법은 누빔이나 마찬가지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애플리케 작품으로서 오래된 것은 카이로의 불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원전 980년의 에시-맴-케브 여왕의 장례식 텐트의 차양 위에 여러 가지 색깔의 곤충, 꽃 모양 그리고 이집트의 전통문양이 장식을 목적으로 애플리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십자군 시대에 깃발이나 외투 그리고 문장에 여러 가지 문양을 만들어 박음질한 것도 애플리케 기법입니다.
15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동안 애플리케는 자수를 대신해 의복과 가정용품에 널리 이용되었습니다.

피싱은 아마도 세가지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기법으로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짐승가죽을 이어 붙인 것은 어떤 형태의 가리개보다 앞섰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6세기에서 9세기간 자주 이용되었던 서역 교역로에 위치한 동굴에서 발견된 봉헌걸개는 피싱기법을 이용한 걸작품입니다.

문학작품에 있어서의 애플리케나 피싱에 대한 언급은 12세기나 13세기의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시에 나타나며, 1726년에 발간된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묘사된 걸리버의 의복에서 볼 수 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국의 피싱, 애플리케 작품은 레이븐즈 홀에 있는 작은 덮개로서, 170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적색과 청색의 인도산 친즈(사라사 무명)을 팔각형과 십자가 형태로 배치한 것인데, 이 작품의 바느질 솜씨와 디자인에서 유추컨데 당시 퀼트가 영국의 가정에서는 흔하게 쓰여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1688년 출간된 백과사전격인 아카데미 오브 아모리에 의하면 누빔, 애플리케, 자수 그리고 조각잇기는 유럽 여자들이 즐기는 바느질 기법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퀼트는 유럽과 미국으로 확산되었고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중산층에 까지 보편화되어 상류층에서부터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널리 보급되었으며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 까지도 여가시간에 퀼트를 하였는데 영국의 아이리쉬 지역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퀼트를 배워 침대커버를 만들어서 서로 교환하기도 하고 가게에 내놓아 팔기도 했습니다.

 많은 남자들 특히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집에서 템플리트 즉 본을 디자인하여 패턴을 만들어서 부인이나 딸들과 함께 퀼트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퀼트의 역사>

 

1620년 최초의 정착민들이 뉴잉글랜드에 도착했을 때의 어려움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을 것입니다.

 초창기의 퀼트는 유럽에서 들어 온  정착민들이 궁핍과 곤경 아래서 겪었을 심각한 물자부족에 대처하는 수단으로서 조각 천을 활용한 옷이나 침대보를 만들어 쓰지 않을 수 없었고, 특히 두터운 속감을 넣음으로써 추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초기의 애플리케나 조각 이음 퀼트는 이주할 때 가져온 침대보 등이 낡아서 못쓰게 됨에 따라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장식을 목적으로 퀼트가 활용되었다는 기록은 없으나 헤어진 부분에 조각천을 애플리케 한다든가 다른 천 조각으로 땜질을 하거나 조각들을 이어서 새로 겉을 만들었습니다.

또, 이때는 실이 비싸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을 때라 이때 만들어진 침대보는 아주 단순했고 이런 전통 때문에 미국의 퀼트 바느질은 전통적으로 유럽(백 스티치-박음질)과는 다른 런닝 스티치(직선 바느질)를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미국의 퀼트 작품으로는 1704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샐톤스톨 퀼트입니다.

이 작품의 윗부분은 수 백개의 조각 천들이 두 조각 정사각형 또는 네 조각 정사각형을 이루는 디자인이며 날개달린 천사를 중앙에 애프리케했으며, 누빔이나 배팅(솜)이 없습니다. 배팅이 없는 것은 18세기 초기의 영국퀼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퀼트 패턴을 자를 때 쓰여졌던 종이가 그대로 같이 바느질됨에 따라 연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퀼트도 1701년도 하버드 대학의 카다로그 조각이 내보임으로써 연대 추정이 가능했습니다. 18세기 초반에 이르면서 퀼트에 대해서 여러가지 기록에서 나타나나 패턴이나 퀼트 종류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퀼트가 일상적으로 쓰임에 따라 특별한 묘사가 필요치 않지 않았는가 추정됩니다.



 



[샐톤스톨 퀼트]

- 실크, 브로케이드 그리고 벨벳 천의 조각들을 이어붙임.

-75x82 인치. 사라 레베렛 부인과 딸인 엘리자베스가 1704년에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주지사를 지낸 레베렛 샐톤스톨의 소장품.

18세기 19세기의 미국에서도 여자들이 학문보다 바느질 등 가사 돌보기를 더 중요시하고 부지런한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여자 아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바늘에 실 끼우는 법부터 시작해서 헤진 퀼트천의 수선법을 배웠으며, 조각 천 자르는 법과 캘리코천(잔잔한 무늬)이나 친츠천을 이용해서 애플리케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마지막으로 바느질 수업의 완성단계에 이르면 수천땀이 소요되는 화이트 퀼트를 만들게 됩니다.

 

수백개의 패턴을 익혀 나가면서 새로운 패턴도 창조하고 자기 자신이 시집갈 때 가져갈 퀼트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한 사람의 퀼트 공예가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부유한 가정에서는 사설 강습소에 보내서 여러 가지 바느질 기술을 익히게 하기도 했습니다. 남자 아이들도 바느질을 익히기는 마찬가지였으며, 보통의 가정에서는 상점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용이치 않았기 때문에 18세기 중반까지는 집안의 모든 가족이 동원되어 바느질 등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어렸을 때 형제들과 같이 어머니를 도와 만들었던 퀼트라든가, 쿨리지 대통령이 직접 베이비 블록 퀼트의 조각들을 잘랐던 작품들이 가문에 전해 내려와 오늘날까지 남아있습니다.

19세기 중반까지 바느질은 성경이나 알파벳과 같이 학교 교과 과정의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미국 사회가 점점 풍요해짐에 따라 18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주부들은 다양한 재료의 천을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퀼트도 점점 화려하고 색깔도 다양해졌습니다.

179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프레임 메달리온 퀼트를 보면, 무려 175가지의 다른 천을 이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가 시간의 증가로 여자들은 퀼트의 장식성에 눈을 떠서 수천 땀이 소요되는 퀼트 디자인을 완성하기 위해서 시간을 아끼지 않았고, 심지어는 한 개의 침대보를 만드는데 몇 년을 소비하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그 동안 미국의 섬유 산업은 태동기를 거쳐 영국과의 전쟁에서 독립을 쟁취함에 따라 죤 휴슨이라는 개척자에 의해 유럽과 동등한 품질의 프린트 천이 생산되게 되었고, 전쟁을 통해 미국적인 스타일과 취향이 확립되게 되었습니다.

1800년에서 1900년 사이 미국에서는 퀼트 형식과 디자인에서 커다란 발전을 이뤘습니다. 이 시기에 그림 앨범퀼트, 빅토리안 크레이지 퀼트 그리고 서명 퀼트 같은 것들이 출현했고 무수한 퀼트 패턴들이 새로 만들어 질 만큼 사람들은 퀼트에 열광적으로 몰입했던 것입니다.
이 시기에 퀼트가 미국사회의 한 전통으로 깊이 자리잡게 된 또 하나의 동기는 퀼팅 비 (quilting bee)가 제공해 주는 모임의 기회일 것입니다. 퀼트 톱이 만들어 진 후에 침대보를 완성시키기 위해 열리는 퀼팅 비는 여자들에게 대화의 장을 마련해 줬습니다.

이와 동시에 자투리 천이나 패턴을 서로 교환하거나 조리법을 전수해 주는 기회도 제공하며 킐팅 비가 마무리 되는 저녁에는 남자들도 참석해서 파티가 열리곤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미혼자들의 약혼 소식이 공개도 되고 특히 외딴 곳의 마을에서는 유일한 사교의 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미국 여성들은 앨라스카, 하와이, 일본 등 그들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퀼트를 전파했습니다.

 

19세기 초에 선교사들의 부인들로부터 전해진 퀼트 기법이 하와이안 퀼트를 탄생시켰습니다.

19세기 초부터 미국에는 컨트리 페어 (지방에서 개최되는 소규모 박람회)가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거의 모든 페어에서 주부들의 솜씨를 겨루는 퀼트작품의 경연이 벌어졌고 퀼트 패턴의 교환등 교류가 이루어 지곤 했습니다.

 

공업화가 이루어지면서 거의 모든 수공예품이 사라졌지만 퀼트는 오히려 공업화에 의해  많은 발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값싸고 다양한 천들이 행상들에 의해 시골 구석까지 공급이 되었고 여성들은 자투리 천에만 의존하지 않고 퀼트를 위해 천을 따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1856년에 독일에서 발명된 아닐린 염색법은 다양한 색상의 천을 구할 수 있게 되었고 1864년의 현대적 재봉틀의 발명은 퀼터들이 보다 손쉽고 빠르게 퀼트를 만들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또 1830년에 창간된 최초의 여성잡지인 “고디즈” (Godey’s Lady’s Book)는 패치워크 퀼트를 보급하는데 앞장 섰으며 19세기 중반에 들어서서는 침대보 뿐만 아니라 잠옷, 무릎덮개, 피아노 덮개등을 퀼트로 만드는 등 빅토리아 시대의 퀼트 번성시기를 맞게 되었으며 실크, 벨벳, 리본 그리고 꽃, 부채, 도안을 자수로 표현하거나 구슬이나 번쩍이는 장식물로 치장한 크레이지 퀼트가 유행했습니다.

19세기말에 가서 퀼트에 대한 열기가 식기 시작했는데 그 주된 이유는 시어즈 백화점 등에서 값싼 담요와 침대보를 대량으로 판매하기 시작했고 많은 여성들이 일자리를 얻어 직업 전선에 뛰어 들기 시작했을 때입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오래가지 않았고 20세기 중 경제상황이나 전쟁 등의 영향에 의해 수시로 퀼트에 대한 열기가 되살아 나곤 했습니다.

1929년 대공황을 맞은 미국에서는 절약과 검소가 커다란 미덕으로 되살아 났고 수공예를 부활시키고 지역의 산업을 부흥시키려는 정부의 노력에 힘입어 퀼트에 대한 대대적인 캠페인이 이루어 졌습니다.

곳곳에서 퀼트 쇼가 열려 700~800개의 퀼트가 한 곳에서 전시되고 관람 관중이 20,000 ~ 25,000명까지 되곤 했었습니다.

특히 루즈벨트 대통령의 부인은 수공예 훈련 계획을 수립하도록 영향력을 발휘하여 곳곳에서 여성들이 퀼트 등의 수공에 기술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대중들의 수공예와 전통 유산에 대한 흥미가 고조된 영향을 받아 새로 만든 퀼트와 집안에 전해 내려온 퀼트에 대한 판매가 백화점 등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 지기 시작했습니다. 

 퀼팅 비 모임 또한 부활해서 미국인들이 전통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들어가던 퀼트가 1970년대에 다시 한번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심과 흥미를 촉발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1971년 휘트니 박물관에서 죠나단 홀스타인과 게일 반 더 후프의 퀼트 소장품 - “추상적 디자인의 미국 퀼트-”라는 주제로 전시한 것입니다.

이 전시회를 계기로 조각잇기의 미국 퀼트가 홀스타인씨가 표현했듯이 “퀼트는 여러 가지 천의 색상과 조직, 가정의 스크랩 백과 이웃의 스크랩 백 등을 배색판 에 올려놓고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이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인식하고 그 대담한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디자인과 현대의 추상화의 동질성에 대해 주목하게 된 것이다. 이 전시를 통해 옛사람들의 미적 감각이 새롭게 인정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바늘, 실, 조각천, 단순한 퀼팅 틀 그리고 바느질 솜씨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퀼트이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또 아름다운 색깔의 조각천, 다양한 디자인 그리고 만드는 정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퀼트에서 만족과 즐거움을 찾고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퀼트를 만들고 발전 시키고 있습니다.

(이 글은 Abbeville Press에서 출판된 Patsy and Myron Orlofsky 공저인 “Quilts in America”에서 대부분의 내용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 책은 1974년 초판이 McGgrow-Hill사에서 출판되었습니다)



*미국 퀼트협회와 퀼트 트레이드쇼*

 

 미국에는  매년 약 2천만에 달하는 퀼터들이  퀼트 작품을 만드는 데 연간 약 2조 4천억 원을 소비 (2000 Quilting in America™의 조사 결과)하는 양대 퀼트 협회와 두 협회가 주관하는 퀼트 트레이드 쇼 (트레이드 쇼라 함은 소비자 또는 소매업자와 생산자 또는 도매업자와의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적 쇼를 말함)에 대해 소개 합니다.

퀼트의 종주국인 미국에는 IQA (International Quilt Association : www.quilts.org)와 AQS (American Quilter's Society : www.aqsquilt.com)의 양대 퀼트협회가 있습니다.

ㆍI Q A

 IQA는 매년 미국 휴스톤에서 개최되는 “Quilt Festival"과 2년에 한번씩유럽에서 개최되는 ”Patchwork & Quilt Expo"를 주관하고 IQA JudgedShow라는 퀼트 콘테스트를 주관합니다.

IQA 회원 가입은 누구나 $35 (해외 거주 : 1년)만 내면 가능합니다.

 회원이 되면 분기에 한번씩 간행되는 “Quilts - A World of Beauty"지를 받아보며 콘테스트에 참가할 수 있고

 IQA 및 자매회사인 Quilts Inc. (www.quilts.com) 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Quilt Market"의 안내서를 미리 받아 볼 수 있습니다.

"International Quilt Market"과 “Quilt Festival"에서는 유명 퀼트선생들이 강의하는 강좌 (class)가 같이 열리기 때문에 별도의 요금을 내고 들을 수 있으며 전시회도 같이 열리므로 훌륭한 퀼트작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International Quilt Market"은 봄에는 미국의 각 도시를 순회하며 열리고 가을에는 항상 휴스톤에서 “Quilt Festival" 직전에 열립니다.





ㆍ A Q S



AQS는 켄터키주 파두카(Padukah)라는 소도시에 본부가 있으며 매년 AQS 퀼트 쇼와 컨테스트를 개최합니다.

 컨테스트의 총상금은 $100,000 이상이며 2002년부터는 퀼트 쇼를 파두카 (4월 24 - 27일)와 내쉬빌 (7월 31일 - 8월 3일) 두 군데에서 개최합니다.

AQS는 퀼트박물관 (www.quiltmuseum.org)을 운영하고 있으며 IQA와 달리 출판사업을 활발히 함으로써 퀼트책을 매년 수십 종류씩 시장에 내놓고 있습니다.

AQS회원은 일년에 $28 (해외 거주)을 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으며 회원은 각종 혜택 외에 매 분기 “American Quilter"라는 잡지를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상호 : 퀼트하우스|서울시 강남구 삼성로 92길 29(삼성동 158-15) 9층|Tel : 02-561-9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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